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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같은 읽기 평가는 왜 누구에게는 공정하고 누구에게는 불공정한가

📑 목차

    이 글은 영어능력평가론 시리즈의 스물아홉 번째 글이다. 앞선 글에서는 읽기 전략과 문항 유형의 관계가 읽기 평가 결과를 어떻게 다르게 만드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왜 공정성과 형평성 문제로 이어지는지를 중심으로, 동일한 읽기 평가가 서로 다른 학습자에게 다르게 인식되는 이유를 분석한다. 다음 글에서는 읽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하기 위한 설계 방향을 다룬다.

     

    영어 읽기 평가가 끝난 뒤 학습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자주 관찰된다. 동일한 시험을 치렀음에도 어떤 학습자는 시험이 공정했다고 느끼고, 어떤 학습자는 시험이 불공정했다고 느낀다. 이 차이는 단순한 점수의 높고 낮음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점수를 받아도 시험이 공정했다고 느끼는 학습자가 있는 반면, 더 높은 점수를 받고도 불공정함을 느끼는 학습자도 존재한다. 이 현상은 읽기 평가의 공정성이 단순히 결과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공정성의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동일한 규칙이 모든 응시자에게 일관되게 적용되었는가에 있다. 읽기 평가에서는 동일한 텍스트, 동일한 문항, 동일한 시간 조건이 제공될 때 형식적 공정성이 확보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기준에서 보면 대부분의 읽기 평가는 공정하게 실시된다. 그러나 학습자들이 느끼는 공정성은 이 형식적 기준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같은 읽기 평가는 왜 누구에게는 공정하고 누구에게는 불공정한가
    같은 읽기 평가는 왜 누구에게는 공정하고 누구에게는 불공정한가

     

    읽기 평가에서 불공정하다고 인식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문항이 요구하는 전략과 학습자의 익숙한 전략 사이의 불일치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읽기 문항은 특정 전략을 요구한다. 문제는 이 전략이 모든 학습자에게 동일하게 접근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험 전략에 익숙한 학습자는 문항 요구를 빠르게 파악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습자는 실제 읽기 이해와 무관하게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공정성은 형식적 문제를 넘어 실질적 문제로 전환된다. 시험이 동일하게 제공되었다는 사실과, 시험이 동일한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은 다르다. 동일한 읽기 평가라도 문항 유형과 전략 요구는 학습자의 교육 경험, 시험 경험에 따라 서로 다른 부담을 만들어낸다. 이때 학습자는 시험을 불공정하다고 인식하게 된다.

     

    형평성 관점에서 보면 이 문제는 더욱 분명해진다. 형평성은 모든 학습자에게 동일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측정하려는 능력 외의 요인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조건을 조정하는 개념이다. 읽기 평가에서 형평성이 문제 되는 지점은 텍스트의 배경 지식 요구, 문항의 사고 수준, 전략 의존성 등이다. 이 요소들은 읽기 능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수 있지만, 결과에는 큰 영향을 미친다.

     

    특정 배경 지식을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텍스트는 일부 학습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 경우 시험은 읽기 능력을 측정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배경 지식 접근성의 차이를 반영하게 된다. 동일한 시험 조건이 형식적으로는 공정하더라도, 형평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습자의 불공정 인식은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의 반영이다.

     

    해석 중심 타당도 관점에서도 공정성 인식의 차이는 중요하다. 읽기 점수가 특정 전략과 문항 유형에 강하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그 점수를 전반적인 읽기 능력의 지표로 해석할 경우 해석의 정당성은 약화된다. 학습자는 자신의 수행이 시험이 요구한 전략에 맞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점수 자체보다 해석 방식에 불공정을 느낀다.

     

    공정성 인식은 시험 결과의 수용도와도 직결된다. 학습자가 시험을 공정하다고 인식할 경우, 낮은 점수라도 학습 개선의 자료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시험을 불공정하다고 인식할 경우, 높은 점수라도 평가에 대한 신뢰는 낮아질 수 있다. 이 점에서 공정성은 단순한 절차 문제가 아니라 평가의 교육적 기능과 직결된 문제다.

     

    읽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은 항상 긴장 관계에 놓인다. 모든 문항 유형을 균등하게 배치하려는 시도는 형식적 공정성을 강화할 수 있지만, 동시에 학습자에게 과도한 인지 부담을 줄 수 있다. 반대로 특정 유형을 중심으로 구성하면 전략 편중 문제가 발생한다. 이 균형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가치 판단의 영역이다.

    같은 읽기 평가는 왜 누구에게는 공정하고 누구에게는 불공정한가
    같은 읽기 평가는 왜 누구에게는 공정하고 누구에게는 불공정한가

     

    평가 설계자에게 이 논의는 중요한 책임을 부여한다. 읽기 평가의 공정성은 규칙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어떤 능력을 중심에 두고, 어떤 전략을 요구하며, 어떤 해석을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공정성 인식을 좌우한다. 이 선택은 시험 설계자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학습자 관점에서 공정성과 형평성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시험이 형식적으로 공정하더라도 자신에게 불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학습자는 점수를 보다 비판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평가를 거부하기 위한 이해가 아니라, 평가 결과를 맥락 속에서 해석하기 위한 이해다.

     

    결국 같은 읽기 평가가 누구에게는 공정하고 누구에게는 불공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평가가 중립적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읽기 평가는 설계자의 선택, 학습자의 전략, 교육 경험이 만나는 지점에서 작동한다. 이 복합적 구조를 인식할 때, 공정성 논의는 단순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개선의 문제로 전환된다.

     

    읽기 평가의 공정성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점검되어야 할 방향성이다. 모든 학습자가 동일한 시험을 동일하게 경험할 수는 없지만, 시험이 측정하려는 능력과 무관한 요인이 결과를 좌우하지 않도록 조정하려는 노력은 가능하다. 이 노력이 있을 때, 읽기 평가는 비로소 교육적 판단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동일한 읽기 평가가 서로 다른 학습자에게 공정하거나 불공정하게 인식되는 이유를 공정성과 형평성 관점에서 분석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읽기 평가 설계에서 어떤 원칙과 전략이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