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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어능력평가론 시리즈의 서른한 번째 글이다. 앞선 글에서는 읽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하기 위한 설계 원칙을 살펴보았다. 이 글에서는 그 논의를 쓰기 평가로 확장하여, 쓰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 문제가 왜 더 복잡하게 나타나는지와 그 구조적 이유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다음 글에서는 쓰기 평가 설계에서 실제로 고려해야 할 핵심 판단 요소를 다룬다.
영어능력평가에서 쓰기 평가는 읽기 평가보다 훨씬 많은 논쟁을 낳는다. 동일한 기준으로 채점되었다고 설명해도, 평가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는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쓰기 평가가 설계나 운영이 미흡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쓰기 평가는 그 본질적 특성 때문에 공정성과 형평성 논의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쓰기 평가는 학습자가 언어를 생성한 결과물을 평가 대상으로 삼는다. 이 점에서 쓰기 평가는 결과가 고정되어 있다는 측면에서는 읽기와 유사하지만, 결과물의 해석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는 말하기 평가와 닮아 있다. 동일한 글이라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 초점은 달라질 수 있다. 이 특성은 쓰기 평가의 핵심 강점이면서 동시에 공정성 논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공정성 문제가 복잡해지는 첫 번째 이유는 쓰기 수행이 다차원적이기 때문이다. 쓰기에는 내용의 적절성, 조직의 명확성, 어휘 선택, 문법 정확성, 담화 응집성 등이 동시에 작동한다. 이 요소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의 요소가 강할 경우 다른 요소의 약점이 상대적으로 덜 눈에 띄기도 한다. 채점자는 이 복합적 수행을 하나의 점수로 통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정성은 단순히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요소를 더 중요하게 보았는지가 평가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동일한 채점 기준을 사용하더라도, 채점자가 어떤 요소에 더 주의를 기울였는지에 따라 점수는 달라질 수 있다. 이 점에서 쓰기 평가는 형식적 공정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형평성 문제는 쓰기 평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쓰기 수행은 학습자의 교육 경험, 장르 노출, 글쓰기 훈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동일한 언어 능력을 가진 학습자라도 어떤 글쓰기 교육을 받았는지에 따라 결과물의 형태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 차이는 쓰기 능력 그 자체라기보다, 쓰기 경험의 차이를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쓰기 과제 자체도 형평성 문제를 확대시킬 수 있다. 특정 주제나 장르에 익숙한 학습자는 과제를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습자는 언어 능력과 무관하게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이 경우 시험은 쓰기 능력을 측정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경험 접근성의 차이를 반영하게 된다.
해석 중심 타당도 관점에서 보면, 쓰기 평가의 공정성 논의는 점수 해석 문제와 깊이 연결된다. 하나의 글은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기 때문에, 점수는 항상 제한된 관점의 결과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쓰기 점수를 전반적인 언어 능력이나 사고 능력의 절대적 지표로 해석할 경우, 평가의 한계는 곧 불공정으로 인식된다.
쓰기 평가에서 채점자의 판단이 필연적으로 개입된다는 사실도 공정성 인식을 복잡하게 만든다. 읽기 평가에서는 정답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쓰기 평가에서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차이는 학습자가 평가 결과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판단이 개입된 평가일수록, 공정성에 대한 설명 책임은 커진다.
쓰기 평가의 공정성과 형평성은 채점 결과뿐 아니라 평가 경험 전반과도 연결된다. 제한 시간, 글자 수 요구, 과제 설명의 명확성은 모두 수행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요소는 언어 능력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결과에는 분명한 영향을 준다. 형평성을 고려한 쓰기 평가는 이러한 운영적 조건까지 함께 관리해야 한다.
읽기 평가와 비교할 때, 쓰기 평가는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가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학습자는 자신의 글을 근거로 평가 결과를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쓰기 평가는 공정성 논의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평가 영역이다. 이는 쓰기 평가가 문제라는 의미가 아니라, 평가의 판단성이 가장 투명하게 노출되는 영역이라는 의미다.
평가 설계자에게 이 복잡성은 회피해야 할 부담이 아니라, 인식해야 할 전제다. 쓰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은 완벽하게 달성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대신 설계자는 어떤 요소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인식하고, 그 차이가 평가 결과를 과도하게 왜곡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학습자 관점에서도 이 이해는 중요하다. 쓰기 점수는 자신의 사고력이나 언어 능력 전체를 대변하는 절대적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 과제 조건과 평가 기준 안에서 이루어진 해석의 결과다. 이 전제를 이해할 때, 학습자는 평가 결과를 방어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학습 정보로 활용할 수 있다.
결국 쓰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 문제가 복잡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쓰기라는 능력이 단순히 측정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 복잡성을 인정하지 않은 평가 논의는 공정성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불필요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이 복잡성을 전제로 한 설계와 해석은 쓰기 평가를 보다 책임 있는 교육적 도구로 만든다.
쓰기 평가는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불완전성은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이해하고 관리해야 할 특성이다. 이 특성을 인식하는 순간, 쓰기 평가는 단순한 점수 산출 도구를 넘어 학습자의 사고와 언어 사용을 이해하는 창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쓰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 문제가 왜 읽기 평가보다 더 복잡하게 나타나는지를 구조적으로 분석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복잡성을 전제로, 쓰기 평가 설계 단계에서 실제로 고려해야 할 핵심 판단 요소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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