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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읽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하려면 무엇을 설계해야 하는가

📑 목차

    이 글은 영어능력평가론 시리즈의 서른 번째 글이다. 앞선 글에서는 동일한 읽기 평가가 왜 어떤 학습자에게는 공정하고, 어떤 학습자에게는 불공정하게 인식되는지를 공정성과 형평성 관점에서 분석했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읽기 평가 설계 단계에서 실제로 고려해야 할 원칙과 판단 기준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설계 원칙이 쓰기 평가로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다룬다.

    읽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
    읽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

     

    읽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일은 단순한 체크리스트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 두 개념은 때로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만, 때로는 서로 긴장 관계에 놓인다. 모든 응시자에게 동일한 시험을 제공하는 것은 공정성을 강화할 수 있지만, 그 동일성이 서로 다른 부담을 만들 경우 형평성은 약화된다. 읽기 평가 설계는 이 긴장을 전제로 출발해야 한다.

     

    가장 먼저 설계자가 선택해야 할 것은 읽기 평가의 중심 목적이다. 읽기 평가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측정하려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공정성과 형평성은 모두 선언에 그친다. 세부 정보 이해를 중심에 둘 것인지, 전체 의미 구성 능력을 중심에 둘 것인지에 따라 텍스트 선택과 문항 설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목적이 명확할수록 불필요한 변인은 줄어든다.

     

    텍스트 선택은 공정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좌우하는 핵심 설계 요소다. 읽기 평가에서 텍스트는 단순한 읽기 자료가 아니라, 평가가 요구하는 인지적 부담의 총합을 규정한다. 특정 문화적 맥락이나 전문 지식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텍스트는 일부 학습자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준다. 형평성을 고려한 설계는 텍스트의 언어적 난이도뿐 아니라, 배경 지식 의존성을 함께 점검한다.

     

    문항 유형의 균형 역시 중요한 설계 원칙이다. 특정 전략에 유리한 문항 유형이 반복될 경우, 시험은 읽기 능력보다 전략 숙련도를 더 많이 반영한다. 공정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한 읽기 평가는 다양한 인지 과정을 요구하는 문항을 적절히 배치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모든 문항을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전략 하나가 과도하게 보상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문항 난이도 분포 역시 설계자의 판단이 개입되는 지점이다. 지나치게 고차 사고를 요구하는 문항만으로 구성된 시험은 교육 경험의 차이를 크게 반영한다. 반대로 지나치게 표면적 이해만을 요구하는 시험은 읽기 능력의 본질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형평성을 고려한 설계는 난이도의 평균값보다 분포의 균형에 주목한다.

     

    해석 중심 타당도 관점에서 읽기 평가 설계는 점수 해석 범위를 함께 설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읽기 점수가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할 수 없는지를 사전에 명확히 하지 않을 경우, 공정성 논의는 사후 갈등으로 이어진다. 설계 단계에서 점수 해석의 한계를 명시하는 것은 공정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호하는 장치다.

    읽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
    읽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

     

    공정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또 하나의 원칙은 전략 의존성을 의식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모든 읽기 문항은 어떤 전략을 요구하지만, 설계자는 그 전략이 학습자에게 얼마나 접근 가능한지를 고려해야 한다. 시험 경험이 풍부한 학습자만이 유리한 전략이 반복될 경우, 읽기 평가는 학습 경험 격차를 재생산하게 된다.

     

    평가 설계자는 공정성과 형평성의 판단을 문항 수준에서만 하지 않는다. 시험 전체 구성, 문항 배열, 시간 배분 역시 평가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 긴 텍스트가 연속으로 배치될 경우 일부 학습자에게는 인지적 피로가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는 읽기 능력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결과에는 영향을 준다. 형평성은 이러한 운영적 요소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설계자의 판단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 역시 중요한 원칙이다. 왜 이 텍스트를 선택했는지, 왜 이 유형의 문항을 포함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할 때, 공정성 논의는 감정적 논쟁이 아니라 이해의 문제로 전환된다. 설명 가능성은 공정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지지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완벽하게 공정하고 형평적인 읽기 평가는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정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하려는 설계 방향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동일함을 고집하는 방향이 아니라, 측정하려는 능력 외의 요인을 줄이려는 방향이다. 이 방향성이 유지될 때, 읽기 평가는 불완전함 속에서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학습자 관점에서 이러한 설계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시험이 자신의 읽기 능력을 완벽하게 대변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부당하게 왜곡하지는 않는다는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신호는 평가 결과에 대한 수용도를 높이고, 학습을 방어가 아닌 성찰의 방향으로 이끈다.

     

    결국 읽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한다는 것은 기술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설계자가 어떤 능력을 측정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 측정이 누구에게 어떤 부담으로 작용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이다. 이 성찰이 있을 때, 읽기 평가는 단순한 선발 도구를 넘어 교육적 판단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읽기 평가에서 공정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하기 위한 설계 원칙과 판단 기준을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쓰기 평가로 확장하여, 쓰기 평가 설계에서 나타나는 공정성·형평성의 문제와 그 대응 방향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