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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읽기 전략과 문항 유형은 왜 서로 다른 능력을 드러내는가

📑 목차

    이 글은 영어능력평가론 시리즈의 스물여덟 번째 글이다. 앞선 글에서는 읽기 평가에서 텍스트와 문항 설계가 능력 해석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글에서는 읽기 전략과 문항 유형의 관계를 중심으로, 학습자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읽기 평가에 대응하는지와 그 결과가 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한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읽기 평가의 공정성과 형평성 문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다룬다.

    읽기 전략과 문항 유형
    읽기 전략과 문항 유형

     

    영어 읽기 평가에서 자주 관찰되는 현상 중 하나는 평소 독해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던 학습자가 시험에서는 기대만큼의 점수를 얻지 못하고, 반대로 실제 독서 능력은 제한적인데 시험 점수는 높은 학습자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현상은 개인의 노력이나 집중력 차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차이는 읽기 능력 그 자체보다, 읽기 전략과 문항 유형이 어떻게 맞물리는지에 따라 발생한다.

     

    읽기 전략이란 학습자가 텍스트를 처리하고 의미를 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인지적 접근 방식이다. 어떤 학습자는 텍스트 전체의 흐름과 논지를 중심으로 읽고, 어떤 학습자는 핵심 문장이나 단서를 빠르게 탐색하며 읽는다. 또 다른 학습자는 질문을 먼저 읽고 필요한 정보만을 찾아 읽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 전략들은 모두 읽기 상황에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평가 상황에서는 서로 다른 결과를 낳는다.

     

    문항 유형은 학습자의 전략 선택을 강하게 유도한다. 사실 확인 문항이 많은 시험에서는 세부 정보를 빠르게 찾아내는 전략이 유리하다. 이 경우 텍스트 전체의 논지를 깊이 이해하지 않아도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추론 문항이나 요지 파악 문항이 중심이 되는 시험에서는 전체 구조를 파악하고 의미를 통합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이 차이는 읽기 전략과 점수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이 지점에서 읽기 능력과 읽기 시험 수행 능력은 분리된다. 읽기 능력이란 실제 상황에서 텍스트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의미하지만, 읽기 시험 수행 능력은 주어진 문항 유형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읽기 전략이 시험 유형에 잘 맞을 경우, 실제 독해력보다 높은 점수가 나타날 수 있다. 반대로 전략이 시험 유형과 맞지 않을 경우, 실제 독해력에 비해 낮은 점수가 나타난다.

     

    구인 타당도 관점에서 이 현상은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읽기 평가가 실제로 측정하는 구인은 읽기 능력 자체가 아니라, 특정 전략을 포함한 복합적 수행 능력일 가능성이 크다. 문항 유형이 특정 전략을 반복적으로 요구할 경우, 시험은 그 전략 숙련도를 중심으로 능력을 구분하게 된다. 이때 읽기 평가는 의도한 구인에서 벗어날 위험을 안게 된다.

     

    해석 중심 타당도 관점에서도 읽기 전략과 문항 유형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특정 문항 유형에 기반한 점수를 전반적인 읽기 능력 지표로 해석하는 것은 해석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 점수는 “이 학습자가 이 유형의 문항에 이 전략으로 얼마나 잘 대응했는가”를 보여주는 정보일 뿐이다. 이 전제가 제거된 해석은 읽기 능력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할 가능성을 만든다.

    읽기 전략과 문항 유형
    읽기 전략과 문항 유형

     

    공정성 문제 역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특정 읽기 전략에 익숙한 학습자에게 유리한 문항 유형이 반복될 경우, 읽기 능력 외의 요소가 평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시험 경험이 풍부한 학습자는 문항 패턴을 빠르게 파악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 경우 읽기 평가는 학습 경험의 차이를 반영하는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

     

    형평성 관점에서는 교육 배경의 차이가 전략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부 학습자는 학교 교육이나 사교육을 통해 시험 전략에 익숙해질 기회를 충분히 가진 반면, 다른 학습자는 그렇지 못할 수 있다. 동일한 읽기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전략 접근성의 차이는 평가 결과의 격차로 이어진다. 이 문제는 읽기 평가를 설계할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읽기 평가에서 전략과 문항 유형의 관계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모든 문항은 어떤 형태로든 특정 전략을 요구한다. 그러나 평가 설계자는 특정 전략 하나가 지나치게 우세해지지 않도록 균형을 조정할 수 있다. 다양한 문항 유형을 적절히 배치하고, 서로 다른 읽기 과정을 요구함으로써 전략 편중을 완화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평가 설계자에게 이 논의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읽기 전략과 문항 유형의 관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시험이 어떤 학습 행동을 장려하고 있는지를 인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험이 특정 전략을 지속적으로 보상할 경우, 학습자는 실제 읽기 능력보다 시험 전략 숙련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이는 평가가 학습을 이끄는 방식과도 직결된다.

     

    학습자 관점에서도 이 인식은 중요하다. 읽기 점수가 자신의 읽기 능력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학습자는 점수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대신 어떤 전략이 요구되었는지, 어떤 유형에서 강점과 약점이 나타났는지를 분석할 수 있다. 이 접근은 평가 결과를 학습 개선의 자료로 활용하게 만든다.

     

    결국 읽기 전략과 문항 유형은 서로를 규정한다. 문항 유형은 전략을 선택하게 만들고, 전략은 문항 수행 결과를 바꾼다. 읽기 평가는 이 상호작용의 결과를 점수로 보여줄 뿐이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점수만을 해석할 경우, 읽기 평가는 쉽게 오해된다.

     

    읽기 평가를 책임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점수 뒤에 있는 전략과 문항 구조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 읽기 능력은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맥락과 요구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는 수행이다. 읽기 전략과 문항 유형의 관계를 이해하는 순간, 읽기 평가는 단순한 점수 경쟁이 아니라 학습을 이해하는 창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읽기 전략과 문항 유형의 관계가 읽기 평가 결과를 어떻게 다르게 만드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읽기 평가의 공정성과 형평성 문제로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