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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왜 자동화될 수 없는가

📑 목차

    ― 영어 이후의 언어와 인간의 마지막 판단

    앞선 글에서 우리는 윤리가 왜 규칙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는지를 살펴보았다. 영어가 정의·조건·결과를 중심으로 판단을 구조화하는 데 탁월한 언어임에도, 도덕 판단의 핵심은 끝내 조건문 밖에 남는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 글은 그 논의를 한 단계 더 밀어붙인다.
    판단이 구조화되고 실행까지 자동화될 수 있다면, 책임은 어디에 남는가.
    그리고 왜 책임만은 끝내 자동화될 수 없는가.

     

    1. 판단과 책임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판단과 책임을 하나의 행위처럼 묶어 생각한다. 어떤 결정을 내렸다면,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인식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판단과 책임은 구조적으로 동일하지 않다. 판단은 조건과 결과의 관계로 설명될 수 있지만, 책임은 결과에 대한 귀속의 문제다.

    영어 문장은 판단을 명제화하는 데 매우 강하다.
    “If X, then Y.”
    이 구조 안에서 판단은 전제의 타당성과 논리적 연결성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문장은 결과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그리고 그 귀속이 정당한지까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책임은 판단의 산출물이 아니라, 판단 이후에 발생하는 사회적·윤리적 관계다.

    자동화와 인간 판단의 균형
    자동화와 인간 판단의 균형

    2. 자동화가 가능한 것은 ‘실행’이지 ‘귀속’이 아니다

    자동화 시스템과 인공지능은 판단을 하지 않는다. 대신 판단 구조를 실행한다. 조건이 주어지면 결과를 도출하고, 규칙이 바뀌면 출력을 수정한다. 이 과정은 인간보다 빠르고 일관되며, 오류 가능성도 낮다.

    그러나 시스템은 결과를 산출할 수는 있어도, 결과를 떠맡을 수는 없다. 책임은 계산된 출력이 아니라, 결과에 대해 “누가 응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발생한다. 이 질문은 규칙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임은 결과가 아니라 관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3. 책임은 조건이 아니라 관계에서 발생한다

    책임은 항상 맥락적이다. 동일한 결과라도 누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선택지를 가진 상태에서 행동했는지에 따라 책임의 무게는 달라진다. 이 관계적 요소는 조건문으로 완전히 포착되지 않는다.

    영어 조건문은 상황을 분해하지만, 관계를 고정하지 않는다.
    “If the system meets the criteria, the decision is applied.”
    이 문장은 시스템의 작동을 설명할 뿐, 그 결정이 누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책임은 이 문장 이후에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4. 영어 이후의 언어가 마주한 한계

    앞선 글들에서 살펴보았듯이, 영어는 지식과 판단을 구조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 구조는 프로그래밍 언어, 기술 문서,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이 확장은 동시에 한계를 드러낸다.

    영어 이후의 언어적 시스템은 판단을 더 정밀하게 실행할 수는 있지만, 책임을 대신 질 수는 없다. 시스템이 아무리 복잡해져도, 책임은 설계자, 운영자, 사회로 되돌아온다. 자동화는 판단을 분산시킬 수는 있어도, 책임을 제거하지는 못한다.

    5. 책임을 자동화하려는 시도의 위험

    책임을 시스템에 전가하려는 시도는 종종 효율성과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규칙에 따라 처리되었다”는 설명은 판단의 공정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책임의 주체를 흐리게 만든다.

    이때 발생하는 문제는 기술적 오류가 아니라, 윤리적 공백이다. 결과는 발생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 응답해야 할 주체가 사라진다. 영어가 판단을 구조화하면서도 책임을 끝내 언어 내부에 봉인하지 않은 이유는, 책임을 자동화하는 순간 사회적 신뢰 자체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인간에게 남는 마지막 역할

    책임이 자동화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인간의 역할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인간의 역할은 더 분명해진다. 인간은 판단을 계산하는 존재가 아니라, 판단의 결과를 감당하는 존재로 남는다.

    영어는 판단을 외부화했지만, 책임까지 외부화하지는 않았다. 책임은 언제나 판단 이후에 남겨지는 질문이며,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이것이 영어 이후의 언어와 시스템이 끝내 넘어서지 못하는 경계다.

    7. 다음으로 이어지는 질문

    이제 시리즈는 하나의 핵심 질문에 도달한다.
    판단은 구조로 이전되었고, 실행은 자동화되었다.
    그러나 책임이 인간에게 남아 있다면,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다음 글에서는
    '왜 영어 교육은 문법이 아니라 판단 구조를 가르쳐야 하는가'를 주제로,
    영어의 역사와 구조를 이해하는 일이
    미래 사회에서 인간의 책임을 유지하는 데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본 글은 영어 문장 구조, 판단 체계, 평가 시스템에 대한 정보성 분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