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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는 누가 설명해야 하는가

📑 목차

    ― 판단 이후에 남는 ‘서술’과 책임의 언어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윤리는 규칙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는 판단의 영역이다.
    조건과 결과를 명시하는 영어식 판단 구조는 많은 사회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윤리 판단을 그 구조 안에 온전히 포함시키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그렇다면 윤리 판단이 내려진 이후,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 글은 그 지점에서 등장하는 ‘설명’의 역할에 주목한다.

     

    기계와 사람의대화
    기계와 사람의대화

    1. 판단은 끝났지만,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규칙 기반 판단에서는 결과가 도출되는 순간 절차가 종료된다.
    조건이 충족되었는지, 규칙이 적용되었는지, 출력이 예상 범위에 속하는지 여부만이 중요하다. 그러나 윤리 판단에서는 결과가 제시된 이후에도 질문이 계속된다.

    • 왜 그런 판단이 내려졌는가
    •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는가
    • 이 판단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질문들은 판단 자체가 아니라, 판단의 의미와 정당성을 묻는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는 행위가 바로 설명이다.

    2. 설명은 규칙이 아니라 서술이다

    중요한 점은 설명이 규칙과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설명은 조건을 나열하는 행위가 아니라, 판단이 내려진 맥락을 재구성하는 서술 행위다. 이때 설명은 결과를 정당화하기보다, 판단 과정이 어떤 관계와 고려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드러낸다.

    영어는 판단을 구조화하는 데 강점을 가진 언어이지만, 설명에 있어서는 또 다른 특징을 보인다. 영어의 설명 문장은 종종 조건문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형태를 취한다.

    • In this situation…
    • Given the broader context…
    • It is important to consider…

    이 표현들은 결과를 고정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판단의 맥락을 다시 따라가도록 유도한다. 설명은 판단을 닫는 언어가 아니라, 판단을 다시 열어 놓는 언어다.

    3. 책임은 설명을 통해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규칙 기반 시스템에서 판단의 책임은 구조 안에 분산된다.
    조건을 설계한 사람, 규칙을 승인한 기관, 시스템을 운영한 조직이 책임의 일부를 나눠 갖는다. 그러나 윤리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회는 단순히 “규칙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설명에 만족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설명 가능한 책임이다.
    즉, 왜 이 판단이 타당했는지, 그 판단이 인간적 고려를 포함했는지에 대한 서술이다. 이 지점에서 책임은 다시 개인과 공동체의 언어로 회수된다.

    설명은 책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이 어디에 있고, 왜 그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한다. 윤리 판단에서 설명이 중요한 이유는, 설명이 판단을 인간 사회의 의미망 속에 다시 위치시키기 때문이다.

    4. 시스템은 설명하지 못한다

    자동화 시스템과 인공지능은 판단 구조를 실행할 수는 있지만, 설명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시스템이 제공하는 것은 조건과 출력의 관계이며, 그 관계가 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서술은 제공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윤리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설명의 책임은 항상 인간에게 남는다.
    시스템이 판단을 실행할수록, 인간은 판단 이후의 설명을 더 많이 요구받는다. 이는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윤리가 언어적·사회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영역임을 보여준다.

    5. 영어는 설명을 위한 공간을 남겨 둔 언어다

    흥미로운 점은 영어가 판단을 구조화하면서도, 설명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어 문장은 결론을 제시하면서도, 그 결론을 둘러싼 배경과 조건을 계속해서 덧붙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로 인해 영어는 판단과 설명이 분리되면서도 단절되지 않는 구조를 갖게 되었다.

    이 구조는 영어가 최종 답을 허용하지 않는 언어가 된 이유와도 연결된다.
    설명은 언제나 추가될 수 있고, 수정될 수 있으며, 새로운 관점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다. 영어는 판단을 고정하지 않음으로써, 설명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

    6. 윤리는 규칙이 아니라 설명으로 유지된다

    윤리는 규칙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규칙 이후에 설명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유지된다. 판단이 내려진 뒤, 그 판단을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규칙이 아니라 설명이다.

    설명은 판단을 정당화하기보다, 판단이 어떤 한계 속에서 내려졌는지를 인정하는 언어다. 이 점에서 윤리는 완벽함이 아니라, 책임 있는 불완전성 위에 서 있다.

     

    다음 글에서는
    '설명은 왜 설득이 되는가 ― 영어 서술이 합의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주제로,

    • 설명과 설득의 차이
    • 영어 서술 구조와 사회적 합의
    • 판단 이후 공동체가 의미를 공유하는 방식

    을 분석할 예정이다.

     

    본 글은 영어 문장 구조, 판단 체계, 평가 시스템에 대한 정보성 분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