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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의 조건문이 도덕을 다루지 못하는 이유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영어는 판단을 개인의 내적 행위에서 분리하여 명제 구조로 외부화해 왔다.
조건이 주어지면 결과가 도출되고, 그 과정은 반복 가능하며 검토 가능하도록 설계된다. 이러한 구조는 법, 과학, 기술, 행정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판단 구조가 모든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윤리의 영역에서 영어식 조건문 구조는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이 글은 윤리가 왜 규칙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는지, 그리고 정의·조건·결과 중심의 영어 문장 구조가 도덕 판단을 다루는 데 구조적으로 취약한 이유를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1. 규칙으로 작동하는 판단과 작동하지 않는 판단
현대 시스템이 처리하는 판단의 대부분은 규칙화 가능하다.
예를 들어 교통 신호, 세금 계산, 계약 조건, 기술 규격은 명확한 전제와 결과를 갖는다. 이러한 판단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표현된다.
- 조건이 충족되면 → 특정 결과가 발생한다
-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 결과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판단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동일한 조건에는 동일한 결과가 따라야 하며, 이는 시스템의 신뢰성을 보장한다. 영어의 조건문 구조는 바로 이러한 판단을 정교하게 표현하고 실행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그러나 윤리적 판단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윤리는 동일한 조건에서도 서로 다른 판단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며, 판단의 정당성은 결과보다 맥락과 관계, 의도에 의해 좌우된다. 이 지점에서 규칙 중심 구조와 윤리 판단 사이의 균열이 발생한다.
2. 윤리 판단이 요구하는 요소들
윤리 판단은 단순한 조건-결과 관계로 환원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윤리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동시에 요구하기 때문이다.
- 행위자의 의도
- 행위가 발생한 구체적 상황
- 관계의 역사와 비대칭성
- 결과가 미치는 장기적 영향
- 선택하지 않은 대안의 존재
이러한 요소들은 고정된 정의나 단일 조건으로 포착되기 어렵다. 윤리는 판단을 내리는 순간, 항상 “이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유”를 함께 요구한다. 다시 말해 윤리 판단은 보편적 규칙보다는 사례 중심적 설명에 가깝다.
영어의 조건문은 이와 같은 사례 특수성을 구조적으로 담아내기 어렵다. 조건을 늘릴수록 문장은 복잡해지지만, 그 복잡성이 윤리적 정당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3. 영어 조건문의 구조적 한계
영어의 조건문은 판단을 명확하게 만드는 대신, 판단의 범위를 제한한다.
“If X, then Y” 구조는 X가 명확하게 정의될 수 있을 때만 작동한다. 그러나 윤리적 상황에서 X는 종종 불완전하며, 판단의 핵심은 X 자체가 아니라 X를 어떻게 해석했는가에 있다.
예를 들어 동일한 결과를 초래한 행위라도, 의도와 상황에 따라 윤리적 평가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조건문 구조는 이러한 해석의 층위를 결과와 분리된 요소로 취급하기 어렵다. 해석은 조건에 포함되거나, 아예 구조 밖으로 밀려난다.
이로 인해 영어 기반 시스템은 윤리 판단을 다룰 때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 윤리를 지나치게 단순한 규칙으로 축소하거나
- 윤리 판단 자체를 시스템의 범위 밖으로 밀어내는 것
두 선택 모두 윤리의 본질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4. 규칙화된 윤리의 위험
윤리를 규칙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종종 선의에서 출발한다. 판단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자의적 결정을 줄이며,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그러나 윤리가 규칙이 되는 순간, 판단은 상황을 이해하는 행위가 아니라 규칙을 적용하는 행위로 전환된다.
이 전환은 다음과 같은 위험을 내포한다.
- 규칙을 따랐다는 이유로 판단의 책임이 약화된다
- 규칙에 포함되지 않은 상황이 도덕적 공백으로 남는다
- 예외가 누적될수록 규칙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윤리는 규칙을 통해 보조될 수는 있지만, 규칙 자체가 윤리를 대체할 수는 없다. 영어의 조건문 구조는 이 보조 역할에는 매우 유용하지만, 윤리 판단의 핵심을 대신 수행하기에는 구조적으로 제한적이다.
5. 시스템 시대의 윤리 문제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확산되면서, 윤리 판단을 시스템에 위임하려는 시도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시스템은 윤리를 판단하지 않는다. 시스템은 정의된 규칙을 실행할 뿐이며, 윤리적 판단의 부담은 규칙을 설계한 인간에게 남는다.
문제는 이 책임이 종종 구조 속에 숨겨진다는 점이다. 판단이 시스템의 출력으로 제시될 때, 책임은 개인도 아니고 시스템도 아닌 불분명한 영역으로 이동한다. 이때 윤리는 규칙의 부재가 아니라, 규칙으로는 다룰 수 없는 영역으로 드러난다.
6. 영어가 남긴 질문
영어는 판단을 구조화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안정성을 높였다. 그러나 동시에 윤리라는 영역이 구조 밖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분명히 드러냈다. 이는 영어의 실패라기보다, 언어가 감당할 수 있는 판단의 범위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윤리는 규칙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규칙이 정교해질수록, 윤리가 개입해야 할 지점은 더 선명해진다. 영어는 이 한계를 숨기지 않고, 구조의 바깥에 질문을 남겨 두는 언어다.
다음 글에서는
「윤리는 누가 설명해야 하는가 ― 판단 이후에 남는 ‘서술’의 문제」를 주제로,
- 윤리 판단 이후 설명의 역할
- 규칙과 서사의 분리
- 영어가 ‘설명’을 통해 책임을 다시 인간에게 돌려주는 방식
을 분석할 예정이다.
본 글은 영어 문장 구조, 판단 체계, 평가 시스템에 대한 정보성 분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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