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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건과 결과의 언어가 다루지 못하는 마지막 영역
영어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설명의 언어 중 하나다.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어떤 조건이 작용했는지, 어떤 결과가 도출되었는지를 명확하게 서술하는 데 있어 영어만큼 효율적인 언어는 드물다. 영어 문장은 전제와 조건, 인과 관계를 선형적으로 배열함으로써 복잡한 상황을 이해 가능한 구조로 환원한다.
그러나 이 강점은 동시에 하나의 한계를 드러낸다.
영어는 설명에는 탁월하지만, 용서를 다루는 데에는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이 글은 그 이유가 화자의 태도나 문화적 결핍이 아니라, 영어라는 언어가 선택해 온 문장 구조의 성격에 있음을 분석한다.

1. 설명은 구조화될 수 있지만, 용서는 계산되지 않는다
설명이란 무엇인가.
설명은 사건을 이해 가능하게 만드는 행위다.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조건과 원인의 연결로 풀어내고, 그 결과가 어떻게 도출되었는지를 납득 가능한 형태로 제시한다. 영어는 이 작업에 최적화된 언어다.
“If X happened, then Y followed.”
“Given these circumstances, the outcome was inevitable.”
이러한 문장은 사건을 해명하고, 판단의 합리성을 입증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설명이 충분히 제시되면, 행위는 이해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용서는 멈춘다. 이해와 용서는 동일한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영어 문장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를 말한다
영어 기반 담론에서 설명은 종종 정당화와 결합된다.
조건이 명시되고, 선택지가 제한되었으며, 결과가 구조적으로 불가피했다는 설명이 제시되면, 판단은 합리적 결정으로 재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책임은 개인의 도덕적 선택에서 구조적 제약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용서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용서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묻는다. 이 질문은 조건과 결과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다. 설명이 충분할수록, 오히려 용서가 어려워지는 역설이 발생하기도 한다.
3. 용서는 조건문으로 닫히지 않는다
영어 문장은 조건문을 통해 사고를 조직한다.
If, when, given, under these conditions 같은 표현은 판단을 명제화하고, 결과를 예측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용서는 조건문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If you did this, then this happened.”
이 문장은 설명이다.
“But still, I choose to forgive.”
이 문장은 설명의 연장이 아니다. 오히려 설명을 넘어서는 선택에 가깝다.
용서는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는다.
설명이 완성된 이후에도 남아 있는 관계의 문제를 다루는 행위다. 영어 문장은 관계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관계를 회복하는 결단까지 구조화하지는 않는다.
요컨대, 영어는 판단을 설명 가능한 구조로 만들었지만, 그 구조가 끝나는 지점에서 용서는 다시 개인의 결단으로 돌아온다.
4. 영어는 책임을 배치하지만, 화해를 설계하지 않는다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영어는 판단과 책임을 문장 구조로 외부화하는 데 탁월한 언어다. 전제, 조건, 예외, 결과를 명시함으로써 책임의 범위를 분산시키고, 결정의 정당성을 문서화한다.
그러나 용서는 책임의 배치 이후에 남는 문제다.
책임이 명확해졌다고 해서 관계가 자동으로 회복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책임이 구조적으로 정리될수록, 용서는 개인의 선택으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영어는 책임을 설계하지만, 화해의 순간을 규칙으로 대체하지 않는다.
5. 설명이 충분할수록 용서는 더 개인적인 선택이 된다
설명은 공적이다.
설명은 공유되고, 검토되며, 합의의 대상이 된다. 반면 용서는 사적이다. 용서는 규칙으로 요구될 수 없으며, 계산으로 도출될 수도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어의 구조적 성향이 드러난다.
영어는 공적 담론에 강한 언어다.
법, 과학, 기술, 정책 영역에서 영어는 설명을 통해 질서를 만든다. 그러나 용서는 질서를 회복하는 행위가 아니라, 관계를 다시 여는 행위다. 이 행위는 언어 구조보다 개인의 감내와 선택에 더 가까운 영역에 속한다.
6. 영어가 약한 것이 아니라, 영어가 멈추는 지점
중요한 점은, 영어가 용서를 배제한 언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어는 용서를 구조화하지 않는 언어다. 설명과 정당화가 끝난 이후, 용서는 더 이상 문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남는다.
이것은 결함이 아니라 경계다.
영어는 판단과 설명을 언어가 담당할 수 있는 최대 지점까지 밀어붙였고, 그 너머는 인간의 선택으로 남겨 두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어는 멈춘다.
7. 설명 이후에 남는 인간의 마지막 영역
설명은 세계를 이해하게 만든다.
그러나 용서는 세계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영어는 첫 번째 과업에는 매우 강하지만, 두 번째 과업을 자동화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영어 기반 시스템은 합리적이지만, 따뜻하지 않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틈은 제거되어야 할 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이 틈은 언어와 시스템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역할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준다. 설명이 끝난 뒤에도 선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인간을 시스템의 부속물이 아닌 주체로 남게 만든다.
이 글은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설명도 규칙도 아닌 영역에서,
그렇다면 ‘윤리’는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가.
다음 글에서는
'윤리는 왜 규칙이 될 수 없는가 ― 영어의 조건문이 도덕을 다루지 못하는 이유'를 주제로,
규칙화 가능한 판단과 규칙화 불가능한 판단의 경계를 본격적으로 분석할 예정이다.
본 글은 영어 문장 구조, 판단 체계, 평가 시스템에 대한 정보성 분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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