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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이후의 판단은 누가 수행하는가

📑 목차

    ― 자동화된 언어 구조와 인간 판단의 재배치

    앞선 논의에서 확인했듯이, 영어는 결론을 언어 내부에 고정하지 않는 구조를 발전시켜 온 언어다. 영어 문장은 언제나 특정 조건과 전제 위에서만 결론을 성립시키며, 그 결론 역시 수정 가능성을 전제로 유지된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은 지식을 폐쇄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과정으로 조직하는 데 기여해 왔다. 이 구조가 충분히 제도화되고 기술적으로 구현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하나의 추가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인지 활동으로 남아 있는가, 아니면 언어로 설계된 구조의 실행 과정으로 이전되었는가라는 문제다.

     

    인간의 판단은 전통적으로 개인의 경험, 직관, 맥락 이해에 의존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사회의 규모가 확대되고 정보 처리의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판단을 개인의 내부 인지 과정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점차 한계를 드러냈다. 이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조건 기반 판단 구조다. 특정 조건이 충족될 경우 특정 결과가 도출되도록 설계된 판단 방식은, 판단을 개인의 심리적 영역에서 분리해 외부의 규칙 체계로 이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영어 문장이 수행한 역할은 단순한 표현 수단을 넘어선다. “If A, then B”로 대표되는 영어의 조건문 구조는 판단의 흐름을 명시적으로 외부화할 수 있는 최소 단위를 제공했다. 이 구조는 판단을 언어적으로 분해하고, 반복 가능하며 수정 가능한 형태로 고정하는 데 적합했다. 그 결과 판단은 점차 개인의 즉각적 사고가 아니라, 사전에 설계된 언어 구조의 실행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자동화된 언어 구조와 인간 판단의 재배치
    자동화된 언어 구조와 인간 판단의 재배치

     

    영어 조건문은 문법적 장치이자 인지적 알고리즘에 가깝다. 전제, 조건, 결과로 이어지는 선형적 배열은 인간이 결정을 내릴 때 사용하는 사고 과정을 거의 그대로 외부에 재현한다. 이 재현된 구조는 개인의 기억이나 감정에 의존하지 않으며, 규칙으로 저장되고 시스템에 의해 실행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다수의 판단은 이미 이러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금융 심사, 위험 평가, 채용 필터링, 콘텐츠 추천, 행정적 결정 등은 특정 조건과 기준이 충족될 경우 자동으로 결과가 산출되도록 설계된 구조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때 중요한 점은 시스템이 스스로 판단을 ‘내린다’기보다는, 이미 언어로 정의된 판단 구조를 반복적으로 ‘실행’한다는 사실이다.

     

    자동화된 판단은 흔히 감정이나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판단 구조 자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변수를 포함할 것인가, 어떤 조건을 우선시할 것인가, 어떤 예외를 허용할 것인가는 모두 설계 단계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이 설계는 필연적으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영어로 작성된 정의와 규칙은 시스템이 세계를 분류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무엇이 정상 범주에 속하는지, 어떤 사례가 예외로 처리되는지는 언어적 정의의 결과다. 따라서 자동화된 판단은 인간 판단의 제거가 아니라, 과거에 언어로 수행된 판단을 고정하고 반복 실행하는 방식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자동화가 확대되면서 판단의 주체가 사라진다는 인식이 제기되지만, 실제로 변화한 것은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판단이 이루어지는 위치다. 판단은 실행 단계에서 이루어지기보다 설계 단계에서 집중적으로 수행된다. 조건을 정의하는 행위, 기준을 설정하는 행위, 변수의 범위를 규정하는 행위가 실질적인 판단 행위가 된다.

     

    이 지점에서 영어의 정의 중심 구조는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정의는 판단의 출발점이며, 무엇을 포함하고 무엇을 배제할 것인지를 미리 결정하는 행위다. 따라서 자동화된 판단 체계에서 인간의 역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 설계자로 이동한다.

     

    자동화된 판단에서 오류가 발생할 경우, 책임의 소재는 종종 불분명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불명확성은 기술 그 자체에서 비롯되기보다, 언어적 정의의 불완전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조건이 과도하게 단순화되었거나, 맥락이 제거된 채 정의가 적용되었을 때 시스템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산출한다.

     

    이 점에서 자동화 시대의 핵심 문제는 판단을 기계에 맡길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을 구성하는 언어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된다. 언어는 판단의 매개물이 아니라 판단의 구조를 형성하는 요소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어는 최종 답을 고정하지 않는 언어다. 이러한 특성은 자동화된 판단 구조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현대의 시스템은 결론을 영구적으로 확정하지 않고, 지속적인 수정과 업데이트를 전제로 설계된다. 기준은 버전 관리되고, 모델은 개선되며, 정의는 재작성된다.

     

    이러한 판단 구조는 영어가 오랜 시간 유지해 온 열린 결론 구조와 구조적으로 연속성을 가진다. 영어 이후의 판단은 인간의 직관이나 기계의 자율성 중 하나로 귀결되기보다, 언어로 설계된 구조가 지속적으로 수정·재배치되는 과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 다음 단계의 질문이 제기된다. 판단이 언어 구조로 외부화되고, 그 구조가 자동으로 실행되는 환경에서 인간의 사고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사고는 여전히 내부 인지 활동으로 남아 있는가, 아니면 외부 시스템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재구성되는가.

     

    다음 글에서는 영어가 사고 과정을 외부로 이전하면서 인간의 ‘생각하는 역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하고, 사고가 더 이상 개인 내부의 활동이 아니라 언어·시스템·환경 간의 상호작용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다룰 것이다.

     

    이 글은 언어 구조와 판단 시스템에 관한 정보성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