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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철자의 게르만적 특성과 로망스적 특성의 충돌: 혼종 철자체계의 탄생

📑 목차

     

    언어의 표기 체계가 단일한 원천에서 출발해 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경우, 사람들은 철자와 발음의 관계를 비교적 명확하게 파악하고 규칙을 쉽게 추론할 수 있지만, 영어와 같이 서로 다른 언어 전통들이 한 시기 안에 격렬하게 충돌하며 뒤섞여 만들어진 혼종적 철자 체계에서는 단순한 규칙을 기대할 수 없고, 그 복잡성은 언어의 구조적 정체성과 깊이 연결된 형태로 유지된다.

     

    영어 철자는 게르만계 언어 전통과 로망스계(주로 프랑스어·라틴어) 전통이 충돌하고 중첩되면서 형성된 체계인데, 이 두 계통은 서로 다른 음운 구조, 서로 다른 표기 규칙, 서로 다른 형태 변화 패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영어는 각 전통의 특징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어느 하나로 일관되게 통일하지 못한 채 수백 년 동안 다양한 표기 관습이 혼재하는 언어적 지층을 만들어냈다. 이 글은 그러한 혼종 철자 체계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고대 영어의 게르만 전통, 중세 영어기의 노르만 프랑스어 지배와 라틴어 학술 문화, 그리고 근대 영어기의 인쇄술 고정 과정이라는 세 가지 구조적 차원에서 탐구한다.

     

    영어 철자 체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영어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고대 영어는 분명한 게르만계 언어였고, 그 조상은 북유럽과 서유럽에 넓게 퍼져 있던 게르만 조어였다. 게르만계 언어들은 모두 강한 굴절과 음운 중심의 단순화 경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단어의 발음이 철자를 결정하던 시기에는 철자보다 발음이 더 우선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고대 영어 역시 발음 중심 언어였으며, 문자 체계는 발음을 충실히 기록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의 철자는 고대 영어의 음운을 직접 표기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철자와 발음은 비교적 일치했다.

    영어 철자의 게르만적 특성과 로망스적 특성
    영어 철자의 게르만적 특성과 로망스적 특성

     

    그러나 고대 영어의 철자 구조는 라틴 알파벳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게르만 조음 구조를 완전히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특수 문자가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þ(thorn), ð(eth), ƿ(wynn), æ(ash)와 같은 문자는 게르만계 음운을 기록하기 위한 도구였고, 이 문자들은 로망스계 언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차이는 영어가 로망스 언어와 접촉하기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노르만 정복 이후 두 계통의 언어가 같은 사회에서 충돌하면서 철자 체계의 혼종성이 심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1066년 노르만 정복은 영어 철자와 발음, 문법 전체에 대대적인 충격을 가한 사건이었다. 노르만 프랑스어는 윌리엄 정복왕과 함께 영국 상류층의 언어로 자리 잡았고, 법, 행정, 종교, 문헌 기록은 프랑스어로 이루어졌다. 영어는 하층민의 언어로 밀려나 글쓰기 문화에서 배제되었고, 문어 체계는 프랑스어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프랑스어의 철자 규칙이 영국의 문헌 기록 체계에 강하게 반영되었고, 영어 단어들도 프랑스식 철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c가 e·i 앞에서 /s/로 발음되거나, g가 e·i 앞에서 /ʒ/ 혹은 /dʒ/로 발음되는 프랑스식 규칙은 영어에 그대로 흡수되었다. 이는 고대 영어의 게르만적 발음 체계와 충돌했으며, 영어의 표기 관습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은 고대 영어식 철자와 프랑스어식 철자를 병행하며 사용했고, 이러한 병행은 하나의 통일된 표기 원칙을 만들지 못한 채 서로 다른 철자 전통이 공존하는 시기를 만들어냈다.

     

    프랑스어의 영향은 단순히 철자 사용 규칙에 그치지 않고 어휘 구조에서도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특히 행정·법률·교육·종교 영역에서 프랑스어 어휘가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영어는 게르만계 단어와 로망스계 단어가 동일한 의미 영역에서 중첩되는 기묘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begin과 commence, freedom과 liberty, hearty와 cordial과 같이 동일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 서로 다른 계통에서 들어왔고, 이 단어들은 서로 다른 철자 원칙을 포함하고 있었다. 게르만계 단어는 발음 중심 철자 전통을 따르며 비교적 정직한 표기 구조를 유지했지만 로망스계 단어는 어원 중심의 철자 구조를 유지하며 철자-발음 일치도는 매우 낮아졌다.

     

    중세 영어에서 라틴어의 영향도 지대했는데, 라틴어는 학술·종교·지식의 언어로 사용되며 철자 구조의 위계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언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어 단어를 라틴어와 유사하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철자를 재구성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영어 철자 조합은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라틴어의 철자를 모방하기 위해 원래 영어에 없는 문자가 삽입되거나 기존 철자가 변경되는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어와 라틴어의 영향이 영어 철자에 미친 충돌적 결과는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정리된다.

     

    첫째, 동일한 철자 조합이 서로 다른 계통의 단어에서 서로 다른 발음을 가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ch는 게르만계 단어에서는 /k/로 발음되었고, 프랑스어에서 유입된 단어에서는 /tʃ/ 또는 /ʃ/로 발음되었다. 이렇게 동일 철자가 여러 계통의 발음 방식을 유지하게 되면서 영어 철자는 규칙성을 크게 잃었다.

     

    둘째, 어원적 철자 복원 운동이 영어 철자를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debt의 b는 라틴어 debitum이라는 단어에서 온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중세 영어 dette에는 b가 존재하지 않았다. 학자들은 라틴어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b를 추가했지만 이 b는 실제 발음에서 나타나지 않았고, 영어 철자에서 침묵 문자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추론적 철자 복원’은 15~16세기 영어 철자 혼란을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이었다.

     

    셋째, 프랑스어·라틴어·게르만어의 철자 규칙이 서로 충돌한 결과, 영어는 단일 원칙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어 hard는 게르만식 철자 원칙을 따르며 h와 a가 발음과 일치하지만, hear는 프랑스어식 철자 원칙이 혼합되며 철자와 발음이 불일치한다. 즉 게르만식 음운 구조와 로망스식 철자 구조가 중첩되면서 영어는 혼종적 표기 체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철자 충돌은 대모음추이 이후 더욱 극대화되었다. 발음은 급격히 변화했지만, 프랑스어·라틴어의 철자 원칙은 과거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어 철자는 시각적으로는 로망스적, 발음적으로는 게르만적 특성을 동시에 보유하게 되었다. 이 구조는 영어 철자-발음 불일치의 핵심 기제가 되었고, 사람들은 철자를 보고 발음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게 되었으며, 영어는 철자를 기준으로 발음 규칙을 만들기 어려운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결정적 변화는 인쇄술 도입 이후에 일어났다. 인쇄술은 개별 필경사들이 지역 방언을 바탕으로 임의로 철자를 기록하던 시대를 끝내고, 특정 출판소의 철자를 사실상의 표준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이미 영어는 게르만적 발음 구조와 로망스적 철자 구조가 뒤엉켜 있었기 때문에, 인쇄술이 고착시킨 철자 자체가 혼종적이었다. 즉 영어 철자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혼합된 표준’이었고, 이는 단순히 복잡한 체계가 아니라 영어의 역사적 현실이 반영된 결과였다.

     

    혼종 철자 체계가 고착되면서 영어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첫째, 철자는 발음보다 훨씬 보수적이며 발음 변화가 철자에 반영되지 않는다. 고대 영어의 발음 중심 표기 전통은 사라졌고, 인쇄되는 순간 철자는 사실상의 고정 기록물이 되었다.

     

    둘째, 영어의 어휘는 게르만계·프랑스계·라틴계·그리스계·노르드계 어휘가 혼재되어 있으며, 각각의 어휘는 서로 다른 철자 규칙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psychological의 ps는 그리스어 특성이 반영된 것이며, knight의 kn은 게르만계, receive의 ce는 프랑스계, agriculture의 agri는 라틴계 관습이다.

     

    셋째, 철자 개혁이 불가능한 언어적 환경이 만들어졌다. 영어 화자 수는 이미 중세 후기에 전 유럽에서 가장 많았고, 근대 이후 세계 언어로 확장되면서 수억 명의 사용자가 동일한 철자 체계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철자 개혁은 언어 공동체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방향이 되었다.

     

    넷째, 영어 철자는 음운적 재구조화를 거듭하는 동안에도 시각 중심의 기록 형태를 유지하면서 역사적 흔적을 광범위하게 보존하는 언어가 되었고, 이는 언어사 연구에서 영어가 특별히 중요한 자료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영어가 왜 지금도 균일한 철자 규칙을 가지지 못하고, 왜 예외가 많은지, 왜 발음 규칙을 표준화하기 어려운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제공한다. 영어 철자는 게르만적·로망스적 전통이 충돌하고 혼합된 결과이고, 이 충돌이 오래 지속되면서 철자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발음과 철자 사이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졌다.

     

    영어 학습자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혼종 철자 체계는 학습을 어렵게 만들고 예외 규칙의 양을 증가시키는 요인처럼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것은 영어가 다양한 사회적 층위와 정치적 충돌 속에서 살아남고 확장해 온 과정을 담고 있는 언어적 기록이다. 영어 철자가 복잡하고 예외가 많은 것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다양한 언어 전통이 공존하는 장대한 역사를 시각적으로 보존하는 결과이며, 이 혼종적 구조는 영어의 가장 독특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