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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글들이 영어의 구조가 AI와 프로그래밍 언어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펴보았다면, 이 글은 그 구조가 기술로 성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언어적 조건이 무엇인지를 다룬다.
인간 사회에서 지식이 기술로 전환되는 순간은 언제나 언어적 사건과 맞물려 있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기술이 되지는 않으며, 어떤 통찰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적으로 재현 가능한 형태로 확장되는 것도 아니다. 기술이 된다는 것은 반복 가능하고, 전달 가능하며, 수정 가능하고, 표준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조건의 출발점에는 언제나 하나의 공통 요소가 자리한다. 바로 정의다.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은 사유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시스템의 구성 요소가 되기는 어렵다.
영어가 기술과 과학의 중심 언어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 언어가 정의를 통해 세계를 고정하고 재사용하는 데 탁월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영어가 특별히 정확한 언어이기 때문도, 표현력이 뛰어나기 때문도 아니다. 영어는 개념을 감각이나 직관에 맡기지 않고, 언어적 구조 안에 고정시켜 반복 사용 가능하게 만드는 데 특화된 언어였다. 바로 이 점에서 영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지식을 기술로 전환하는 장치로 기능해 왔다.
정의는 흔히 사전적 설명이나 개념 요약 정도로 오해되지만, 실제로 정의는 훨씬 더 강력한 인지적 행위다. 정의란 개념의 경계를 설정하는 일이며, 무엇이 그 개념에 속하고 무엇이 속하지 않는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행위다. 경계가 설정되는 순간, 개념은 더 이상 개인의 사고 속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 세계에서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 전환된다. 정의된 개념은 비교될 수 있고, 결합될 수 있으며, 분해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술의 전제 조건이다.
영어 문어체에서 정의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학술 텍스트, 기술 문서, 법률 문건, 정책 보고서 어디에서나 정의는 가장 앞에 배치된다. “X is defined as…”라는 문장은 이후에 전개될 모든 논의를 통제하는 기준점이 된다. 영어는 세계를 묘사하기 전에 먼저 언어적으로 고정하고, 그 고정된 틀 안에서만 사고를 전개하도록 요구하는 언어다. 이 점에서 영어는 직관의 언어가 아니라 통제의 언어에 가깝다.
영어 정의문의 또 다른 특징은, 개념을 감각적 이미지나 은유로 설명하지 않고, 범주와 기능을 중심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어떤 대상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때, 그것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며, 어떤 조건을 만족하고, 어떤 경우에 적용되는지를 명시한다. 이러한 정의 방식은 개념을 경험 세계로부터 분리해 추상적 객체로 만들며, 이 객체는 이후 다양한 맥락에서 재사용될 수 있다. 기술은 바로 이 재사용성 위에 구축된다.
정의되지 않은 개념이 기술화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의되지 않은 개념은 경계가 불분명하고, 해석이 사람마다 달라지며, 적용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기술은 예측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동일한 입력에 대해 유사한 출력이 반복되어야 하며, 절차는 표준화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언어적 정의다. 영어 기술 문체는 이 점에서 극도로 엄격하며, 모호함은 오류의 원인으로 간주된다.
과학 역시 정의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과학은 관찰에서 출발하지만, 관찰만으로는 지식이 되지 않는다. 관찰은 정의와 분류를 통해 개념화될 때 비로소 학문적 대상이 된다. 영어 과학 문체는 이 과정을 언어 차원에서 체계화했다. 변수는 정의되고, 조건은 명시되며, 결과는 정의된 용어로만 기술된다. 이 순환 구조는 과학 지식을 축적 가능하게 만들었고, 영어는 이 구조를 가장 안정적으로 구현한 언어였다.
기술 영역에서도 동일한 패턴이 반복된다. 소프트웨어와 공학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작업은 언제나 정의다. 변수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함수는 어떤 입력을 받아 어떤 출력을 내놓는지, 시스템은 어떤 상태를 가질 수 있는지 모두 정의를 통해 결정된다. 정의가 불명확하면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으며, 오류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언어적 문제로 귀결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정의 작업이 거의 예외 없이 영어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지 영어가 국제 공용어이기 때문이 아니다. 영어는 이미 정의 중심 사고를 언어 구조 차원에서 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적 개념을 안정적으로 고정할 수 있는 언어적 도구를 제공했다. 영어는 기술을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였다.
정의는 또한 책임의 구조를 만든다. 정의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와 무엇을 기대할 수 없는지를 동시에 규정한다. 기술 시스템에서 오류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정의를 기준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판단한다. 정의가 없다면 책임도 없다. 영어 법률 문체와 기술 문체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둘 다 정의를 통해 가능성과 한계를 설정하고, 그 설정을 바탕으로 판단을 수행한다.
이 점에서 영어는 세계를 ‘설명하는’ 언어라기보다, 세계를 ‘설계하는’ 언어에 가깝다. 정의를 통해 개념을 고정하고, 고정된 개념을 다시 조합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영어는 개념을 얼려 버리는 언어가 아니라, 움직일 수 있도록 고정하는 언어다. 이 역설적인 구조 덕분에 영어는 지식을 경직시키지 않으면서도 기술로 만들 수 있었다.
영어 이후의 언어를 상상할 때, 정의의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기술과 지식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직관이나 암묵적 이해에 의존하는 방식은 한계에 부딪힌다. 인공지능, 자동화 시스템, 글로벌 협업 환경에서는 명시적 정의 없이는 협력이 불가능하다. 이때 언어는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시스템을 조율하는 인터페이스로 기능한다.
미래의 언어가 영어를 대체할 가능성은 있어도, 영어가 만들어낸 정의 중심 구조를 건너뛸 가능성은 낮다.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소리를 가질 수는 있어도, 정의를 통해 세계를 고정하고 재사용하는 구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영어 이후의 언어는 영어를 부정하는 언어가 아니라, 영어가 구축한 구조를 더 정밀하게 밀어붙인 언어일 가능성이 크다.
정의가 기술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 정의된 개념이 시간과 상황을 넘어 동일하게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 통찰이나 철학적 개념은 특정 맥락에서는 유효할 수 있지만, 그 맥락을 벗어나는 순간 해석이 흔들리면 기술이 될 수 없다. 기술은 언제, 어디서, 누가 사용하더라도 유사한 결과를 낳아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정의의 맥락 독립성이다. 영어 정의문은 이 맥락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정의는 경험을 제거하고, 조건을 명시하며, 적용 범위를 제한함으로써 개념을 상황으로부터 분리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부정 정의와 예외 규정이다. 영어 정의는 “무엇인가”를 말하는 동시에 “무엇이 아닌가”를 함께 규정한다. 이는 개념의 확장을 막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오용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기술 시스템에서 오류의 상당수는 기능의 실패가 아니라 정의의 경계가 모호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영어 기술 문서가 끊임없이 “This does not include…”, “This applies only when…” 같은 문장을 덧붙이는 이유는, 정의의 범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시스템 전체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정의는 시간을 관리하는 언어적 장치이기도 하다. 정의된 개념은 현재의 이해를 고정하지만, 동시에 미래의 수정 가능성을 남긴다. 영어 정의문은 대개 영원한 본질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for the purposes of this system”, “in this context”, “as defined here”와 같은 표현을 통해 정의의 유효 범위를 한정한다. 이는 정의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특정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는 규칙임을 명확히 한다. 이 점에서 영어 정의는 교리적 선언이 아니라, 설계 문서에 가깝다.
이러한 정의 방식은 인공지능과 자동화 시스템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기계는 암묵적 이해를 갖지 않으며, 정의되지 않은 개념을 추론으로 보완하지도 않는다. 시스템이 이해하는 것은 정의된 입력과 조건뿐이다. 따라서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정의의 정밀도는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안정성의 문제로 전환된다. 영어가 여전히 기술 언어의 중심에 있는 이유는, 이 언어가 정의를 통해 인간 사고를 기계가 처리 가능한 단위로 분해해 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의는 권력과도 연결된다. 무엇이 정의되는가, 누가 정의하는가, 어떤 정의가 표준이 되는가는 곧 어떤 기술이 작동하고 어떤 기술이 배제되는지를 결정한다. 영어 정의문이 국제 표준, 기술 규격, 법적 기준의 언어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영어가 단순히 설명의 언어가 아니라 결정의 언어로 기능해 왔음을 보여준다. 정의는 중립적인 설명이 아니라, 시스템을 구성하는 설계 선택이며, 영어는 이 선택을 가장 체계적으로 수행해 온 언어다.
결국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이 기술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기술이 기계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금속과 코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구조 위에 세워진다. 영어는 정의를 통해 개념을 고정하고, 그 고정된 개념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언어다. 바로 이 점에서 영어는 과거의 세계 언어가 아니라, 미래 기술 언어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이 도달하는 결론은 분명하다. 미래의 언어가 무엇이 되든, 정의를 중심으로 세계를 재구성하는 구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언어는 여전히 영어가 만들어낸 사고의 계보 위에 놓여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정보성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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