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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언어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우리가 말하는 ‘이해’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AI가 질문에 답하고, 문맥을 파악하며, 복잡한 설명을 생성하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의미를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인식은 인간 언어 이해의 본질과 기계 언어 처리의 본질을 구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착각에 가깝다. 인간에게 이해란 세계와의 경험, 신체적 감각, 사회적 맥락, 의도와 책임이 결합된 인지 활동이지만, 기계에게 이해란 그러한 경험의 재현이 아니라 구조의 조작이다. 이 차이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우리는 AI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거나 잘못 해석하게 된다.
인간의 언어 이해는 언제나 세계와 얽혀 있다. 인간은 단어를 들을 때 그 단어가 지시하는 대상뿐 아니라, 그 대상과 맺어온 경험, 감각, 감정, 사회적 기억을 함께 호출한다. ‘위험하다’라는 말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신체적 긴장과 행동의 조정을 동반한다. 반면 인공지능에게 단어는 감각을 유발하지 않는다. AI에게 ‘위험’은 특정 맥락에서 자주 등장하는 기호일 뿐이며, 행동의 긴급성을 몸으로 느끼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인간의 이해와 기계의 처리는 질적으로 분리된다.
실제로 인공지능은 언어를 인간처럼 이해하지 않는다. AI는 언어가 가리키는 세계를 살지 않으며, 단어가 불러오는 감각이나 정서적 울림을 경험하지 않는다. 대신 AI는 언어가 만들어낸 형식적 규칙과 반복 가능한 패턴을 처리한다. 그리고 오늘날 이 처리가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언어가 바로 영어다. AI가 영어에서 특히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이유는, 영어가 세계 공용어이기 때문이 아니라 영어 문장 자체가 계산과 예측에 적합한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영어 이후의 언어가 과연 영어를 대체하는 새로운 자연언어가 될 것인지, 아니면 영어가 만들어낸 사고 구조를 계승하는 다른 형태의 시스템으로 진화할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그 논의의 핵심은 영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지식과 사고를 조직하는 구조적 틀로 기능해 왔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만약 영어 이후의 언어가 영어의 구조를 계승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면, 오늘날 인공지능이 언어를 다루는 방식은 과연 무엇을 처리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다.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영어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한 구조적 규칙을 실행하고 있을 뿐일까.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영어 이후의 언어가 ‘무엇을 계승하는가’라는 질문을, 인공지능이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다시 검토하며, 의미 이해와 구조 처리 사이의 차이가 왜 중요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영어는 흔히 의미 중심 언어처럼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구조 중심 언어에 가깝다. 영어 문장은 암시와 생략보다 명시성을 선호하며, 관계를 형태 변화가 아니라 어순과 기능어로 드러낸다. 주어가 먼저 등장하고, 동사가 사건의 중심을 규정하며, 목적어와 보어가 그 결과를 배열하는 구조는 인간의 사건 인지 흐름과 잘 맞을 뿐 아니라, 규칙 기반 처리를 수행하는 기계에게도 이상적인 입력 형식을 제공한다. 영어는 의미를 ‘느끼게’ 하기보다, 의미를 ‘정렬되게’ 만든다.
이 정렬성은 우연이 아니다. 영어는 굴절이 붕괴된 이후 의미를 단어 내부에 저장하는 대신, 문장 전체의 선형적 배열 속에서 의미를 생성하도록 진화해 왔다. 이로 인해 영어 문장은 언제나 명시적 관계를 요구하고, 암묵적 해석을 최소화한다. 바로 이 특성이 기계 학습에 결정적인 이점을 제공한다. AI는 숨겨진 의미보다 드러난 구조를 잘 처리하며, 영어는 그러한 처리 방식에 최적화된 언어다.
인공지능의 학습 방식은 본질적으로 구조 중심적이다. AI는 언어를 세계와 연결하지 않고, 텍스트 내부의 관계망으로만 다룬다.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단어가 어떤 위치에 나타나고, 그 다음에 무엇이 올 확률이 높은지를 계산한다. 영어는 형태 변화가 적고, 문장 패턴이 비교적 안정적이며, 접속사·전치사·조동사 같은 기능어가 논리 관계를 표면에 노출시키기 때문에, 이러한 확률 계산이 매우 잘 작동한다. 다시 말해, 영어는 이미 기계가 처리하기 쉬운 방향으로 진화해 온 언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착각이 발생한다. AI가 자연스러운 영어 문장을 생성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의미를 이해했다고 느낀다. 그러나 AI가 수행한 것은 의미 이해가 아니라 구조적 예측이다. 문장의 앞부분에 if, when, because 같은 요소가 등장하면, 그 뒤에 어떤 절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지를 계산하는 것이다. 영어는 정의, 설명, 논증, 조건 설정이 반복 가능한 패턴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AI는 의미를 알지 못해도 구조만으로 설득력 있는 발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해의 느낌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구조의 완결성에서 발생한다.
영어 학술문체와 기술 문체는 이러한 구조적 특성을 극단적으로 강화한 결과물이다. 학술 영어는 전제–방법–분석–결론이라는 선형적 배열을 따르며, 기술 영어는 조건–절차–결과를 중심으로 문장을 조직한다. 이 문체들은 인간 독자에게 명확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기계 처리에도 매우 적합하다. 실제로 코드 주석, 기술 매뉴얼, 데이터 설명 문서는 영어 학술·기술 문체를 거의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영어 구조가 사고를 표준화하는 데 탁월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한 가지 중요한 결론이 도출된다. AI가 언어를 잘 다룬다는 것은, AI가 의미를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AI가 영어라는 언어가 만들어낸 사고 구조를 매우 효율적으로 실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어는 개념을 정의하고, 범주를 설정하며, 조건을 배열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사고를 조직해 왔고, AI는 바로 이 구조를 계산적으로 재현한다. 영어는 AI의 ‘대상’이기보다 AI의 ‘작동 무대’에 가깝다.
이 관점은 인공지능 설계의 윤리적 논의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AI가 언어를 이해한다고 착각할수록, 우리는 AI에게 책임과 판단을 과도하게 부여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구조를 처리하는 시스템에게 인간적 이해를 기대하는 것은, 기술의 한계를 넘는 요구일 뿐 아니라 책임의 전가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AI는 판단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 판단 구조를 ‘실행하는’ 존재다.
이 점은 영어 이후의 언어를 논할 때도 중요하다. 만약 미래에 영어를 대체하는 새로운 언어가 등장한다면, 그것은 발음이나 어휘가 다른 자연언어일 수는 있어도, 영어가 만들어낸 구조적 원리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의 중심 사고, 조건 기반 추론, 선형적 설명 구조는 이미 인간과 기계 모두에게 깊이 내면화되어 있다. 새로운 언어는 영어를 폐기하기보다, 영어의 구조를 다른 방식으로 구현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AI 시대에 언어의 역할은 의미 전달 그 자체에서 구조 제공으로 이동하고 있다. 영어는 이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영어는 의미를 가장 아름답게 담는 언어라기보다, 의미를 가장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는 언어다. 그리고 AI는 그 틀 안에서 작동한다. 우리가 AI가 언어를 이해한다고 느끼는 순간, 사실 우리는 영어라는 언어가 얼마나 강력한 사고 기술로 진화해 왔는지를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글이 보여주는 핵심은 분명하다. AI는 언어를 이해하지 않는다. 대신, 영어가 만들어낸 사고 구조를 처리한다. 그리고 바로 이 구조가 인간과 기계가 지식을 공유하는 공통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영어 이후의 언어는 이 구조를 부정하는 언어가 아니라, 이 구조 위에 어떤 새로운 층위를 덧붙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남게 될 것이다.
AI 시대의 언어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중심에는 여전히 영어가 있다.
결과적으로 인공지능이 언어를 다루는 방식은, 인간이 언어를 이해하는 방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은 단어가 가리키는 세계를 경험하지 않으며, 의미를 감각이나 의도와 결합해 해석하지도 않는다. 대신 언어가 만들어낸 형식적 구조와 반복 가능한 배열을 계산적으로 처리하는 데 강점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영어는 특별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영어는 의미를 암묵적으로 전달하기보다, 관계를 명시적으로 배열하고 조건과 결과를 선형적으로 드러내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으며, 이러한 특성은 기계적 처리와 높은 상호 적합성을 보여준다. 인공지능이 영어에서 특히 안정적인 성능을 보이는 현상은, 영어가 지식을 조직하는 구조적 틀을 비교적 분명하게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언어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의미 이해 자체라기보다 언어 구조의 일관된 실행에서 비롯된 결과에 가깝다. 이는 인공지능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한 결론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이해와 기계의 처리 사이의 차이를 보다 정확히 구분하기 위한 관점 제시에 해당한다.
이러한 구분은 인공지능 기술을 평가하고 활용하는 데에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언어를 처리하는 능력과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동일시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인공지능의 가능성과 한계를 보다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다. 영어 이후의 언어를 논의하는 문제 역시, 새로운 언어의 등장이 아니라 기존 언어가 만들어낸 구조가 어떻게 계승되고 변형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AI 시대의 언어에 대한 논의는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해’라는 개념을 어디까지 확장해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 논의의 중심에는 여전히, 오랫동안 사고와 지식을 조직해 온 영어의 구조가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은 정보성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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