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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학술어의 대부분이 라틴어인 이유: 지식어휘의 기원

📑 목차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게르만계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만, 학술적이거나 전문적인 담론으로 들어가는 순간 전혀 다른 어휘 환경을 마주하게 된다. science, theory, structure, function, definition, analysis, concept 같은 단어들은 모두 라틴어 또는 그리스어 기반이며, 영어 학술어의 핵심을 구성한다. 이 현상은 단순히 외래어 차용이 많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가 아니다. 영어 학술어의 라틴어 중심 구조는 지식이 생산되고 권위가 형성되던 역사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언어적 선택의 결과다.

     

    중세 유럽에서 지식의 중심은 교회였고, 교회는 라틴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했다. 신학 논문, 철학적 논증, 법률 문서, 행정 기록은 모두 라틴어로 작성되었으며, 라틴어는 지식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공용 언어로 기능했다. 이 시기 각 지역 언어는 일상생활의 언어로만 사용되었고, 학술적 개념을 체계적으로 축적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지식은 언어를 통해 접근할 수 있었고, 그 언어가 곧 라틴어였다.

     

    영국 역시 이 구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고대 영어는 일상의 언어였으며, 교육과 학문, 문서 행정의 언어는 라틴어였다. 수도원과 학교에서 이루어지던 교육은 라틴어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학습과 지식 전달을 위한 기본 어휘 역시 라틴어에서 유입되었다. scholar, master, letter 같은 단어들이 일찍부터 영어에 자리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어는 학술어를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기보다 이미 정교하게 구축된 라틴어 지식 체계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성장했다.

    지식어휘의 라틴어기반 학술어
    지식어휘의 라틴어기반 학술어

     

     

    노르만 정복 이후 프랑스어가 상류층 언어로 자리 잡았지만, 라틴어의 학문적 지위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프랑스어는 정치와 법률, 행정 영역에서 어휘를 제공했지만, 철학적 개념과 추상적 사고를 표현하는 언어는 여전히 라틴어였다. 이 이중 구조 속에서 영어는 사회적 권위 표현에는 프랑스어 계열 어휘를, 지식과 논증에는 라틴어 기반 어휘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정착했다. 그 결과 영어 학술어는 자연스럽게 라틴어 중심의 형태를 갖게 되었다.

     

    라틴어가 영어 학술어의 핵심이 된 결정적 계기는 중세 대학 제도의 형성이다. 12~13세기 유럽 대학들은 모두 라틴어를 공용어로 사용했고, 국적이 다른 학자들 역시 라틴어로 토론하고 글을 썼다. 철학, 수학, 의학, 법학, 신학의 기본 개념들은 이 시기에 라틴어로 정의되었고, 이 정의 체계는 이후 수세기 동안 유지되었다. 영어는 학문 언어로 본격적으로 기능하기 시작할 때 이미 완성된 라틴어 개념 구조를 기반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근대 과학혁명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했다. 17세기 이전까지 과학 논문은 대부분 라틴어로 작성되었고, 영국의 과학자들 역시 라틴어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뉴턴의 저작이 라틴어로 쓰였다는 사실은 라틴어가 과학적 정확성과 보편성을 상징하던 언어였음을 보여준다. 이후 영어가 과학 언어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기존 라틴어 개념과 용어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고, 영어는 이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학술어를 확장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라틴어는 영어 학술어에 적합했다. 영어는 굴절이 약한 분석적 언어로 발전했기 때문에, 개념 간의 관계와 위계를 어휘를 통해 표현해야 했다. 라틴어의 접두사·접미사 체계는 이러한 요구에 정확히 부합했다. sub-, trans-, inter-, -tion, -ity 같은 요소들은 개념을 세분화하고 논리적으로 조직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였고, 영어는 이 체계를 통해 새로운 학술어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라틴어 기반 어휘는 의미적 특성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게르만계 단어가 구체적이고 경험 중심적인 반면, 라틴어 계열 단어는 추상적이고 개념 중심적이다. write와 describe, help와 assist 같은 쌍은 단순한 동의어 관계가 아니라 사용 맥락과 사고 방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학술적 글쓰기에서 라틴어 기반 단어가 선호되는 이유는 복잡한 개념을 정밀하게 구분하고 구조화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교육 제도 역시 이러한 구조를 강화했다. 영국과 미국의 고급 교육 과정에서 라틴어 기반 어휘는 학문적 소양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었고, 학술적 글쓰기 능력은 곧 라틴계 어휘를 정확히 사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평가되었다. 이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져, 학술 논문과 연구 보고서에서는 라틴어 기반 표현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영어 학술어가 라틴어 중심으로 형성된 이유는 결국 영어가 학문 언어로 성장하던 시기에 지식 생산의 중심 언어가 라틴어였기 때문이다. 게르만계 어휘는 일상을 담당했고, 프랑스어는 사회적 위계를 표현했으며, 라틴어는 개념과 논리를 제공했다. 영어는 이 세 층을 분리된 채로 흡수하며 오늘날의 다층적 언어 구조를 완성했다.

     

    이 구조는 영어가 세계 학문의 중심 언어로 기능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라틴어 기반 학술어는 국제적으로 공유되는 개념 체계를 제공했고, 영어는 이를 매개로 다양한 학문 공동체를 연결할 수 있었다. 영어 학술어의 라틴어적 성격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식이 축적되고 전달되는 방식 속에서 선택된 언어적 결과다.

     

    이 글은 정보성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