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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영어 표기의 정착과 사전 편찬의 시대: 언어 권위의 탄생

📑 목차

     

    근대 영어 표기의 정착과 사전 편찬
    근대 영어 표기의 정착과 사전 편찬

     

    근대 영어 표기가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형태로 정착된 과정은 단순히 문자 선택이나 철자 규칙을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선, 정치적 권력과 지적 권위, 경제적 이해관계, 인쇄 기술의 보급, 교육 제도의 변화가 서로 결합하며 만들어낸 장대한 역사적 구조였다. 이 구조는 영어라는 언어가 국제적 지위를 얻게 되는 선행 조건이었고, 사전 편찬이라는 지적 작업이 발화 공동체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도구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기도 했다. 특히 근대 영어 표기의 형성은 발음 변화와 철자 고정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출발하며, 그 속도 차이가 사전이라는 매개 장치에 의해 표준으로 제도화되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사전 편찬은 언어가 지닌 실제 모습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의 특정 계층이 바라본 언어 규범을 정착시키는 행위였고, 그 과정은 영어의 표기 체계를 결정하는 핵심 과정이었다.

    표기 체계의 변화와 고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세 말과 근대를 연결하는 인쇄술 도입기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쇄술 도입 이전의 영어 표기는 필경사가 문헌을 작성하는 방식에 따라 수없이 달라질 수 있었고, 문어는 지역 방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필경사들은 저마다의 철자 습관을 사용했기 때문에 중세 문헌에서는 같은 단어가 동일 문서 안에서도 다른 철자를 가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knight는 knyght, knicht, knite 등으로 다양한 형태로 기록되었고, through는 thorow, thurgh, throgh 등으로 표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은 필사본 문화에서는 용인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시 영어의 문어 사용자는 극히 제한적이었고, 문헌의 기능도 대부분 종교적 기록이나 사적 문서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기 체계가 표준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회적 혼란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표기 체계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부상했다. 인쇄술은 단어를 동일한 형태로 반복 복제하는 기술이며, 이 기술의 도입은 표기 체계의 안정성을 필수 조건으로 만들어냈다. 출판된 문서를 읽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철자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강화되었고, 인쇄업자들은 본인의 판단과 시장 요구를 기준으로 특정 철자 형태를 선택하고 반복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런던 중심의 인쇄소들이 사용하던 철자는 지역 방언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고, 상업 문서나 행정 문서와 결합되면서 이 철자 체계는 사실상의 표준과 유사한 지위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 철자는 발음을 반영한 과학적 표기 체계가 아니라, 인쇄업자의 선택과 편의, 그리고 당시 시장 환경의 우연한 흐름에 의해 고착된 체계였다.

    인쇄 기술이 보급되던 시기에 발음은 이미 중세 영어의 장모음 체계를 벗어나 근대 영어 발음으로 변하고 있었고, 발음 변화는 매우 빠르게 진행된 반면 철자는 인쇄물을 통해 빠르게 고정되었다. 이러한 시간차는 영어 표기 체계의 복잡성을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예를 들어 meet와 meat, scene과 seen, night와 nite 같은 단어들에서 철자는 서로 다르거나 혹은 동일하게 보이지만 발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수렴하거나 분리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철자는 발음 변화보다 훨씬 보수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발음과 철자의 불일치는 급격히 심화되었다.

    이러한 불일치를 정리하는 중심 기제가 바로 사전 편찬이었다. 사전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단어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안내하는 지적 나침반이었고, 근대 사회에서 문해력이 확산되면서 사전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사람들이 읽고 쓰는 활동이 늘어나자, 올바른 철자를 제시하는 문서적 권위가 필요해졌고, 사전은 그 권위를 형성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따라서 사전 편찬은 단순한 단어 수집이 아니라, 언어 규범을 설계하고 권위를 정하는 지적 행위였다.

    근대 영어 표기 정착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사무엘 존슨의 사전이었다. 존슨은 1755년 방대한 영어 사전을 출판했으며, 이 사전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영어 표기 규범을 사실상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존슨은 영어를 라틴어와 같은 고전 언어의 위상으로 끌어올리고자 했고, 영어가 문학적·학술적 언어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표기 체계가 안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단어의 철자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발음을 기준으로 삼기보다, 당시 문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철자를 기준으로 삼았다. 즉 존슨의 사전은 언어의 실제 음운 구조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인쇄물에서 널리 재생산되고 있던 철자를 정리한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장점은 다양한 철자 형태가 있는 단어를 하나로 통일함으로써 문어 통일성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단점은 중세에서 내려온 철자 오류와 불일치가 고스란히 표준으로 고착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debt의 b는 라틴어 debitum과의 관련성을 강조하기 위해 삽입된 잘못된 철자였고, island의 s도 어원적 착각으로 삽입된 것이었지만, 존슨 사전은 이러한 철자를 그대로 표준으로 수용했다. 따라서 영어 표기 체계는 원형보다 정확하게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의 오류가 문헌 권위를 통해 굳어지는 형태로 확립되었다.

    존슨 사전의 영향력은 단순한 표준화 차원을 넘어 정치적 권위와 결합했다. 당시 영국은 식민지 확장과 무역 활동을 통해 국제적 영향력을 키우며 세계 언어로 자리 잡고 있었고, 사전은 이러한 국가적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전 편찬은 단순한 문헌 편집이 아니라, 국가의 언어 정체성을 제도화하는 장치였고, 교육 제도는 사전을 중심으로 학생에게 철자를 가르쳤다. 이 과정에서 영어 철자 규칙은 교육의 핵심 요소가 되었고, 사전이 결정한 철자 형태는 교육을 통해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다.

    사전 편찬은 미국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노아 웹스터는 영국식 영어가 미국 사회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고 보고, 영어를 미국식으로 재편하기 위해 사전 편찬 작업에 뛰어들었다. 웹스터는 발음 중심의 철자 개혁을 시도하며 color, honor, center와 같은 단어에서 불필요한 u나 re 구조를 제거했다. 이러한 개혁은 미국에서 빠르게 정착되었고, 미국식 영어는 독자적인 표기 체계를 가지고 성장했다. 그러나 웹스터의 발음 중심 개혁은 제한적으로만 성공했으며, 철자 전체를 발음 기반으로 바꾸는 개혁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정착되지 못했다. 이는 문헌, 법률, 교육, 출판 시스템이 이미 영국식 철자 구조를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며, 지식 전달의 안정성이 철자 개혁보다 우선시되었기 때문이다.

    근대 시기에 이루어진 사전 편찬은 지식 생산과 소비의 양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기반이 되었고, 표준화된 영어는 학술 문헌, 과학 논문, 무역 문서, 법률 문서에서 폭넓게 사용되었다. 특히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유럽에서 과학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지식을 표준 언어로 기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고, 영어는 영국의 산업화와 맞물려 지식 생산 언어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표기 체계의 일관성은 필수적인 조건이었으며, 사전 편찬은 이 일관성을 제도적으로 안정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근대 영어 표기 정착의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사전 편찬자가 언어의 ‘기술자’가 아니라 ‘설계자’로 기능했다는 점이다. 자동차나 건물을 설계하는 기술자처럼, 사전 편찬자는 언어의 규칙을 설계하고 표준을 결정했다. 표기 체계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언어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이 반영된 구조였고, 사전은 그 구조를 강화하는 장치였다. 존슨과 웹스터뿐만 아니라 이후의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 역시 이러한 설계자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수십 년에 걸친 작업을 통해 영어의 모든 단어와 철자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정의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근대 영어 표기의 정착은 철자 규칙 자체를 완성한 것이 아니라 철자 규칙이 갖는 사회적 권위를 확립한 사건이었다. 즉 사전 편찬과 표기 정착의 결합은 영어가 세계 언어로 확장되기 위한 인프라를 만들어냈으며, 철자 규칙의 비합리성은 교육과 권위의 장치를 통해 제도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영어는 발음과 철자가 불일치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일치는 언어의 결함이 아니라, 발음 변화보다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철자 체계가 지식 생산과 교류를 지속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표기 체계는 발음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영어라는 언어가 다양한 지역, 다양한 국가, 다양한 사회 계층에서 사용될 수 있는 안정적 도구로 기능했다.

    결국 근대 영어 표기의 정착은 사전이라는 도구를 통해 역사적 우연과 사회적 필요가 결합한 결과였다. 철자는 발음을 반영하지 못하지만, 사전은 그 철자를 권위의 중심으로 만들었고, 교육과 문해력 확산은 그 권위를 더욱 강화했다. 이 구조는 영어를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세계적 지식 언어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